우리는 모든 플랫폼에서의 성착취 종식까지 멈추지 않는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하며
한겨레의 2019년 11월 17일 기사를 통해 이른바 ‘n번 방’을 포함한 텔레그램 내 성착취 문제가 수면 위에 오른 지 세 달여가 지났다. 그간 텔레그램 성착취와 관련한 청와대 청원은 20만 명을 넘겨(1월 25일) 정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고, 온라인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의 동의 서명을 얻어(2월 10일)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이다.
텔레그램 성착취는 강남역 살인사건, 불법촬영물로 수익구조를 만든 소라넷과 웹하드 카르텔, ‘미투(#MeToo)’ 운동에 이어, 또다시 한국의 여성들이 집단적인 분노를 느끼며 주목하고 있는 사건이다. ‘n번 방’ 내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노예'라고 칭하며 협박해 성적 촬영물을 만들고, 성착취물을 고액에 판매하고, 더 수위가 높은 가해행위에 가담하기 위해 현물을 거래하는 등 조직적인 성착취를 저질렀다. 그러나 여성들이 분노와 절망을 함께 느낀 것은 가해의 가혹성 때문만이 아니다. 텔레그램에서는 ‘n번 방’ 흥행 뒤, 여성들에게 낯선 듯 익숙한 지인 능욕, 합성 사진, 약물 성폭력 영상, 화장실 불법촬영물 등을 주제로 한 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발견한 60여 개 방의 참여자를 단순 취합하면 26만여 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그중 한 곳은 2만여 명의 참여자와 평균 온라인 인원 1천 명 이상의 큰 규모이다. 텔레그램 안에 이런 방이 얼마나 많은지는 다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가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남성문화를 계승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남성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통해 완성되고 있음에 분노한다.
다행히 2월 7일, 경찰청은 브리핑을 통해 성착취물 제작을 유도, 유포한 자들과 구매자 66인을 검거했음을 알렸다. 또 사이버테러수사대에 ‘텔레그램 추적 기술적 수사 지원 TF’를 구성하는 등 이 문제를 집중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경찰의 노력과 의지를 환영한다. 우리는 ‘홍대 몰카 사건’ 때 경찰이 얼마나 발 빠르게 가해에 대처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반성폭력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지를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앞으로의 수사에서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분노할 사안이라고 믿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각 부처와 각계인사가 ‘인간으로서의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알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명징하게 드러내야만 할 것이다. 이번에 검거된 자들이 이번에도 재판부에서 ‘초범이라’, ‘반성해서’ 기소유예 식의 처분을 받는다면 제2, 제3의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가 발생하도록 방조하는 것과 진배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기 때문에 ‘야동 돌려 보는 것 정도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했고, 텔레그램 성착취는 그 결과 중 하나에 불과한 까닭이다. 검찰도 조국 수사 당시 보여준 저력을 보여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법원 역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텔레그램 성착취의 피해자를 지원하고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활동해온 단체들은 정부, 경찰 등을 만나 제대로 된 수사와 피해자 지원 대책,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말 언론보도 이후 이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2020년 2월 14일 오늘, 텔레그램 성착취에 관련한 이 모든 문제에 복합적으로 대응하고자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 공동 대책 위원회가 출범한다.
2018년에 여성들이 예언했듯, 한국은 결코 미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2020년의 여성들 역시 ‘더 이상 그 누구도 성착취의 피해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힘주어 말한다. 이에 더 많은 개인과 단체가 주목하고 변화를 위한 활동에 함께 해주시길 요청한다.
2020년 2월 14일
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탁틴내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